제가 상을 너무 빨리 탔어요. 2014년에 첫 공연하고 재미로 앨범이라고 묶어서 디지털 레코드 같은 곳에 혼자 이메일 보내서 음원도 내고 하면서 지내다가, 너무 이른 시기인 2017년에 한국 대중음악상을, 그 당시 주목받는 신인으로 확 상을 타버렸어요.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저를 존중해 준다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Q. 초기 시부야케이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나요?
제가 13살 때 부모님께 용돈 받아 맨 처음 사본 음반이 클래지콰이 1집이고요, 그런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검색하다 미디를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설치해서 아무거나 눌러보면서 모든 10대 시절을 다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컴퓨터 앞에서 뭔가 찍어내고, 만들어내고, 혼자 의미를 찾는 것에 빠져서 사는 청소년이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클래지콰이를 좋아하면 일본의 'FPM'이나, 'm-flo' 음악을 들어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 일본에서 나온 모든 전자 음악을 사람들이 시부야케이라고 멋대로 부르던 시기였더라고요. 진짜 시부야케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Flipper's Guitar'나 'Pizzicato Five' 같은 것을 찾아 들었던 건 오히려 18살, 19살 이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원래 좋아하던 뿌리가 있다 보니 역시 제 결에도 잘 맞더라고요.
사실 저는 시부야케이에 대해 해박한 것은 맞지만, 제가 영향을 받은 음악들은 시부야케이라기보다는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FreeTEMPO', 'Daishi Dance' 같은 일본 전자 음악이라고 얘기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영국에서 나온 댄스 음악들, 'The Chemical Brothers'나, 빅비트라고 불리던 브레이크 비트로 만들어진 텍스처가 거친 느낌의 드럼을 사용하는 90년대 말의 음악 영향도 굉장히 크게 받았습니다. 2010년 들어갈 때쯤에는 셔플 댄스나 테크토닉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었어요.
시부야 케이가 저의 첫 토양이었던 것 같고요, 그 위에 일렉트로 하우스와 빅비트를 섞어 나온 것이 지금의 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 토양을 섞어서 구현한 것 중에 제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빅비트입니다. 한국에서 평론가들에게 빅비트 만드는 프로듀서로 인정받는 일이 정말 없는데, 저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더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빅비트는 정말 아무도 안 하고 저만 하는 것 같아서, 블루오션을 잘 살린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관심 있게 듣고 있는 음악이 있나요? 선호하지 않은 음악도 궁금해요!
요즘 관심사는 엉뚱하게도 여름이라 그런지, 삼바를 계속 듣고 있어요. 라틴 하우스 같은 음악만 계속 듣고 있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지 찢기라고 표현하는, 드러머가 라이드, 스네어, 킥, 하이햇을 동시에 치는 그런 부류의 와장창한 드럼들이 나오는 정신없는 삼바를 좀 많이 찾아서 듣고 있습니다.
선호하지 않는 음악은 R&B 음악들이에요. 들으면 좀 간지럽더라고요. 평소에 밝은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끈적거리거나 쳐지는 느낌의 음악은 싫더라고요.
Q. 음악을 시작하고 어떻게 성장해 왔고, 다른 선배나 후배들과 어떻게 교류할 수 있었나요?
처음 음악 판에 나올 수 있었던 경험은 19살에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제 선생님인 이준오 선생님을 만났던 일이에요. 그 강의가 단체 강의였고, 홍대라는 공간에서 힙스터 같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음악을 배우고, 끝나면 같이 술 먹으러 가고 하면서 어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제가 막내여서 귀여움을 받았는데, 거기서 챙겨주던 선배들이 있었고, 그들이 공연한다고 하면 저를 데리고 가 주고, 그러다 같이 갔던 술집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되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혼자 전자 음악을 시작한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혼자서는 못한다고 전 언제나 얘기하는 편이에요. 시대가 너무 좋아서 DM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가 권하는 방법은 자신의 곡을 USB에 담아서 직접 찾아가 인사하며 전해주고, 앨범을 내면 다른 평론가에게 이메일 다 돌려보라고 하는 편이에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크게 조언한다면 딱 2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당신이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내가 하는 일을 업으로 간주하라'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엑셀도 할 줄 알아야 하고요, 이메일 쓸 때 이모티콘 섞어 쓰지 않는 등 그런 기본적인 소양과 현실 감각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두 번째는 혼자 있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음악 만드는 건 물론 혼자 할 수 있지만, 음악가가 되는 건 절대 혼자 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대학생이라면 동아리를 반드시 들어야 하고요, 저처럼 단체 강의에 가거나 직장인 밴드라도 하던지, 어디 가서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당장 들려줄 사람이 옆에 있는 엄마밖에 없을 거예요. 엄마가 들으시고 '좋네' 한마디 하시겠죠. 우린 그걸 들으려고 음악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만약 온라인 활동을 좋아한다면, 자신의 곡을 많이 올려보고, DM도 직접 보내보고, 이런 활동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요, 눈높이랑 취향이 맞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어보면 좋겠어요. 위에도 많이 컨택해보면 좋겠고, 사람은 무조건 곁에 두어야 하는 것 같아요.
Q. 레슨생이나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나, 추천해 주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한국 전자음악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러니까 대중음악이 아닌 장르 음악을 말하면 저는 한국에서 원탑이에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를 매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제가 스피커 안 쓰고 헤드폰으로 음악 만든다고 지적받았는데, 저는 대중음악이 아니기도 하고, 제가 표현하는 음악은 동네 카페가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울려 퍼지잖아요.
그런 사람이라면 헤드폰으로 믹스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 다 표현할 수 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제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요. 케이팝 프로듀서로 데뷔하고 싶은 친구들한테는 제 경험담이 그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저에게 배울 게 있다면 저 같은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반드시 차트인하는 것만 음악적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들어가는 것도 성공인 것 같아요. 저는 그 점에서 너무 큰 자부심이 있거든요.
제 레슨생들은 대부분 다 노이즈 음악 하거나, 오타쿠 계열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에요. 세상에 없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제 레슨을 들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의 음악을 추천했을 때 사람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뜻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제 주변에 있는 친구 중에서는 'Guinneissik (기나이직)'이라는 음악가를 추천해 보고 싶어요. 클래식을 전공하고 저와 함께하면서 독특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돼버린 친구인데요, 올해 한국 대중음악상의 노미네이트가 된 레슨생이기도 해서, 그 친구의 음악이 아주 희한하니까 한 번 희한한 세계를 맛보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음악을 하기로 한 뒤에 지금의 키라라가 오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힘들었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와 같이 일했는가'가 큰 힘든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제 성격상의 문제로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이 문제였을 수 있겠죠.
두 번째로는, '사람들은 진짜 내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 나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내가 대상화된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또 힘든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다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고, 개인 멘탈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도움을 주는 건 무조건 정신과 의학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서울을 떠나 영종도 쪽으로 가면서 좋아진 점이 많은데, 이상하게 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더 외롭더라고요. 아마 평생을 쌓아온, 다른 맥락에서 보면 어떤 소수자라는 입장에서의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멀리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음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 연구하고 고뇌에 빠지면서 작업 vs 즐기면서 즉흥적인 느낌에 따라 작업, 키라라님은 어떤 편이신가요?